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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픔의 삼각형] 해석 : 돈? 외모? 힘? 지금부터 계급장 한번 떼어보자. 본문

영화 리뷰

영화 [슬픔의 삼각형] 해석 : 돈? 외모? 힘? 지금부터 계급장 한번 떼어보자.

풀버전 보는 사람 2023. 6. 12. 01:39

(읽는 데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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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푸린 미간, 슬픔의 삼각형.

카페나 맛집에서, 끝없는 아이폰 연속 촬영 셔터 소리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도 사진 찍는 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다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서다.

당신은 그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는 사람인가? 눈살을 찌푸리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열렬히 동참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슬픔의 삼각형Sadness of Triangle'은 '찌푸린 미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가치관을 드러내는 슬픔의 삼각형은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어떤 모습으로 계속 변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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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평등한 시대 맞아?

영화의 중심인물인 '칼'과 '야야'는 모델 커플이다. 평등의 메시지를 걸치고 화려한 런웨이를 활보하지만 여전히 고착된 성 역할과 궁핍함,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이용하는 것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자. 힘의 논리가 작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힘이 센 아이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권력을 가졌다. 몇 년 전까지는 돈의 논리가 작용했다. 부모님 직업은 무엇인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생일파티는 어떻게 하는지, 아이들조차 수저를 따졌다.

요즘 학교에서는 '외모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그 힘은 비단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외모는 부나 스타일로도 커버되지 않은 선천적 축복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선망성 있는 존재가 되었다.

외모는 교육으로도, 다른 어떤 것으로도 평등해지기 쉽지 않다. 외모가 훌륭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성공하고, 돈도 잘 버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성공이라는 말보다는 소셜 임팩트가 있다는 말이 더 맞을 수 있겠다. 외모는 돈만큼 지금 시대의 힘이 센 권력 같아 보인다.

칼과 야야는 안타깝게 아직까지는 큰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자신들의 소셜 임팩트로 고급 요트에 탑승할 수 있는 협찬을 받아 돈 많은 사람인 척하기 시작한다. 그 행세가 돈과 인기를 가져다줄 거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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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급 요트에 승선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돈 많은 승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들이다. 그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나뉜다.

부자 승객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업가들이다. 과거에 비료나 무기를 팔아 부자가 되었거나, IT 회사를 팔아 큰돈을 번 사람들이다. 그 사업들이 썩 탐탁치만은 않지만 오늘날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오직 칼과 야야만 다른 부류다.

승무원들은 조금 더 여러 계급으로 나뉜다. 승객을 접객하는 승무원들은 멋지게 빼입은 백인들이다. 승객들의 요구에 YES로 응할 것을 독려하는 교육 장면은 오늘날 긍정적 사고를 맹목적으로 독려하는 기업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요리사나 청소부는 흑인, 동남아시아 사람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책임을 다하나, 이들이 생활하는 위치는 요트 속에서도 수면 아래일 것이다. 이 계층구조를 싣고 요트는 혼돈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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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전복되자

모두가 평등해졌다.

한 부자 승객의 주문으로 모든 승무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수영을 시작한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승무원의 난감함을 깡그리 무시한 채 바쁜 승무원들에게 모두 수영을 시킨다.

승선한 사람들이 모두 수면에 모이는 이 사건은, 모든 계급이 다시 같은 출발선에 설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자초한 것은 자신의 행동이 갑질인 줄도 모르는 부자다.

요트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선장 주최 만찬. 폭풍우에 배가 요동친다. 승객들은 고급 요리와 샴페인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게워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잔치는 끝나고 폭풍 속에서 모두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해지고,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러시아 자본주의자 사업가와 미국 공산주의자인 선장의 술주정에서, 세계를 갈라놓은 이념 싸움에 대한 냉소가 엿보인다. 아무도 잡지 않아 멋대로 움직이는 요트 조종간, 그리고 무기 거래상에게 돈을 벌어다 준 수류탄이 요트를 폭파시키는 장면은 현실의 국제 정세를 아프게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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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한 무인도를 지배하는

새로운 논리, 새로운 선장.

무인도의 새로운 대장은 요트 청소부 애비게일이다. 오직 그녀만이 사냥을 하고, 불을 피우고, 생존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은행에 보관된 숫자들, 값비싼 보석,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쓸모가 없어진다.

권력을 가진 그녀만이 문이 닫히는 구명정에서 잘 수 있다. 그리고 젊고 잘생긴 칼은 그녀에게 몸을 팔며 먹을 것을 구한다.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논리가 완전히 달라졌고, 계급과 먹이사슬이 뒤집혔다.

 
 
 

과연 그들은 언제까지 섬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 섬엔 과연 그들만 있었을까? 애비게일과 칼, 그리고 야야의 관계는 어떻게 꼬여갈까? 마지막 이야기는 언젠가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놓는다.

온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숲속을 미친 듯이 달리는 칼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칼은 어떤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슬픔의 삼각형을 잔뜩 찌푸린 채 내달리는 그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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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나 약하다.

스마트폰을 보며 생각한 적이 있다. 일, 즐거움, 연락, 시계, 그리고 내가 가진 돈까지 이 안에 다 들어있는데, 갑자기 세상에 전기 공급이 멈추면 나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를 지탱하던 디지털 기술들이 무용지물이 되면, 세상은 생각보다 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만큼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생각보다 더 나약한 존재들이다.

영화의 설정은 우리가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어떤 논리가 세상에 작용할 것인지도 똑똑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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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외침,

"인 덴 볼켄 In den Wolken"

뇌졸중으로 하나의 문장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승객이 등장한다. 모든 순간에 그녀가 외치는 이 말은 '구름 속(위)'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 속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불확실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의미한다.

이 메시지는 감독이 계속해서 외치고 싶은 말이기도 할 것이다. 코미디는 반복이라고 했던가. 이 작은 설정이 영화를 더욱 극적인 코미디로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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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슬픈 모양,

삼각형에 대하여.

'슬픔의 삼각형' 속에 그려진 삼각형 계층구도를 보고 있으면, 삼각형이라는 도형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아픈 모양인지 느끼게 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해 돈을 번 사람들은 뾰족한 꼭대기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가난한 후손들은 아래쪽에 깔려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인물을 비웃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실컷 웃다가 무기력해지고, 골똘해지기도 했다. 삼각형 속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모델 커플인 칼과 야야 또한 언제든지 슈퍼스타가 될 수도, 아무 것도 못하고 몸을 파는 창부가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서 삼각형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이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발버둥으로 살아야 할까.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어, 슬픔의 삼각형은 깊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