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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버전 보는 사람
[긴긴밤] 독후감 줄거리 : 어른들이 더 많이 본 동화책. 울고 싶은 날 다시 꺼내볼 이야기 본문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은 2021년에 1쇄를 찍고 이미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었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서점에서 이 책을 살 때, 표지의 일러스트를 보며 서로 다른 존재 간의 우정, 사랑, 동행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예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저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 '노든', 그리고 이름조차 없는 아기 펭귄이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는 스토리이다.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의 심사평 내용을 빌리자면 이 이야기는 '귀여운 동물 이야기도, 우화도 아닌,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로드무비'다. 단순히 마음 따뜻해지는 동화가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인 로드무비라서 일까. 그들의 여정이 우리 인간들의 삶과 많이 닮아있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을 누른다.
사막과 초원이 작품의 주된 배경이라 그랬는지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기온이 바뀌고 몸 어딘가에 찬 바람이 들이닥치는 기분이었다. 나를 뚫고 지나간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본다.

노든, 치쿠, 그리고 불길한 알이 '우리'가 되어가는 여정.
코뿔소는 주로 초원에서 산다. 더운 낮에는 쉬고 밤에 주로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 내내 노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한다. 한낮에 이글거리는 사막을 기꺼이 건너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또한 흰코뿔소는 소규모 무리(2~5마리) 생활을 하는 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야기는 자꾸만 노든을 혼자 남게 만든다. 타의로 인해 유일한 무기인 뿔도 잘린다. 노든은 이 이야기에서 흰코뿔소의 본성과 섭리를 묵묵하게 역행하게 된다. (*흰바위 코뿔소는 현재까지 찾아보았을 때는 실재 하지 않는 종이다.)
검은 반점이 불길해 아무도 품지 않던 펭귄 알을, 두 펭귄이 아빠가 되어주고 목숨을 걸고 돌본다. 전쟁 중 폭격으로 동물원이 잿더미가 됐을 때, 폐허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아빠 펭귄 '치쿠'는 양동이에 알을 담고 이동하다 노든을 만난다. 그리고 곧 알에서 태어날 아이를 자신도 한번 가보지 못한 '바다'라는 곳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고집한다. 이유는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 사명에 노든을 동참시킨다.
서로 전혀 다른 존재들이 악몽을 꾸는 긴긴밤을 같이 보내고,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가르쳐 주고, 같이 힘들어하고 또 즐거워하고, 반드시 지킬 약속을 맺는, 이 여정을 가능케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서로 다른 존재들이, 왜 같은 길을 걸어가는가?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이름은 북쪽(영어 Northen, 독어 Norden)을 연상시킨다. 반면 펭귄은 남극에 서식한다. 대륙의 최남단 바다로 나가야 물속에서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고', 고향인 남극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든은 코뿔소가 가지 않아도 되는 길에, 가면 안 되는 여정에 기꺼이 동참한다. 치쿠도 자신의 피부가 말라버리는 것도 모른 채, 생명을 소진해가며 바다로 간다.
노든과 치쿠는 수많은 '죽음'을 알고 있다.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동물원 울타리 안에서 안전할지언정 바람처럼 자유롭게 달리지 못하는 자신들의 삶을 죽음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둘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진정으로 살아있을 수 있는 장소'에 보내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생명'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이어달리기.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이 존속되는 이유는? 생명은 도대체 왜 끝이 없는 이어달리기를 계속하는가? 이 이야기에서는 코끼리 무리가 새끼 코뿔소를 지키고, 코뿔소는 작은 펭귄을 지키고, 펭귄은 못난이 알을 지킨다. 이유도 모른 채, 죽기 전까지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것만 몸에 각인이 되어있는 것 같다.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다. 이야기 속에서 아무도 "왜?"라며 이유를 묻지 않는다. 총을 쏘는 인간들의 행각도, 쓰러진 노든을 도왔던 인간들의 행동도, 이야기 속에서 모든 일은 자연재해처럼 여겨진다. 지금으로서는 '일어날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고, 존재는 그 자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겠다. 그래서 생명의 이어달리기 또한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신비하고 순리적인 움직임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Diasphora)'기 때문에.
『긴긴밤』의 서사는 개인 단위, 가족 단위, 민족 단위로도 읽혔다. 책장을 덮고 생각하다 보니,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디아스포라(Diasphora)
‘씨를 뿌리다’라는 그리스어 ‘dia sperien’에서 유래된 말.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한다.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출처 : 두산백과
디아스포라는 최초의 뉘앙스와는 다르게 식민주의로 인한 분산과 해체의 의미를 가지며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이후 근현대사에서 이민자, 난민, 망명자, 이주노동자 등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자,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않는 이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정치, 인권 문제 등과의 연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디아스포라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출처/참고 : 카이스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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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유럽과 북미의 한인 3세들을 만난 적이 있다. 부모는 한국인, 나는 캐나다인. 생김새는 한국인, 그러나 한국말을 못 하는 나. 들어보니 갑작스런 실어증을 겪기도, 불분명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는 모두 노든과 치코, 코뿔소를 키운 코끼리 무리가 되어 어떤 동물이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세계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가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더 예민하다. 타인을 더 많이 아는데, 더 많이 혐오하기도 한다. 지금 시대는 모든 물줄기가 합쳐졌다가 흩어지길 반복한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삶의 이유가 되고, 삶은 지속될 수밖에 없기에 서로를 밀어내면 흐르지 못하고 역류할 것이다. 살기 위해, 남은 방법은 서로에게 기꺼이 녹아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자란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정서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동문학은 그 교육적, 미술적 가치 때문에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아동문학론의 이해 강의에서) 배웠다. 『긴긴밤』과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자란 세대는 어떻게 성장할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더러운 웅덩이에 비친 별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우리가 수많은 긴긴밤을 버티며 앞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긴긴밤』을 읽으며 퇴근하던 길. 내 발자국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했다. 몸속 어딘가에 빙하가 흐르기도, 이글거리는 사막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나는 오래오래 그 안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끝.
* * 『긴긴밤』은 e-book도 있지만, 가까운 서점에서 만나보시길 추천합니다 * *